앙리 마티스(1869~1954)와 폴 세잔(1839~1906)는 서로 다른 세대이지만,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두 거장입니다. 세잔은 19세기 후반 인상주의를 넘어 후기인상주의로 나아가며, 구도와 형태의 구조적 완성도를 추구했습니다. 마티스는 세잔에게서 받은 영향을 바탕으로 색채와 형태를 해방시키며 20세기 모던아트의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이번 글에서는 두 작가의 구도, 색채, 조형을 비교하며, 그들의 예술세계가 어떻게 연결되고 차별화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구도: 구조와 해방의 차이
세잔의 구도는 치밀함과 안정성이 특징입니다. 그는 사물을 단순히 눈에 보이는 대로 재현하지 않고, 형태의 본질과 구조를 드러내기 위해 화면을 설계했습니다. 정물화를 예로 들면, 테이블 위 사물들의 위치와 기울기, 그리고 원근법의 변형이 의도적으로 계산되어 있습니다. 이는 단순한 배치가 아니라, 사물 간의 관계와 화면 전체의 구조를 강화하기 위한 방법이었습니다. 대표작 〈사과와 오렌지가 있는 정물〉을 보면, 그가 사물의 위치를 조정해 시선이 자연스럽게 화면을 순환하도록 유도한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마티스 역시 구도를 중요시했지만, 세잔의 ‘엄격함’과는 달랐습니다. 그의 구도는 자유롭고 유연하며, 때로는 대칭과 균형을 과감히 무시했습니다. 마티스에게 구도는 정해진 틀을 맞추는 작업이 아니라, 색과 형태가 화면에서 ‘어떻게 대화를 나누는가’를 보는 과정이었습니다. 대표작 〈붉은 방(The Red Room, 1908)〉을 보면, 원근감이 사라진 평면적인 구도임에도 색과 패턴이 전체를 안정적으로 묶어 줍니다. 세잔이 구조적 안정감을 위한 구도를 추구했다면, 마티스는 감각적 조화와 시각적 리듬을 위한 구도를 만들었습니다.
색채: 절제와 해방의 대비
세잔의 색채는 절제되어 있지만, 깊이가 있습니다. 그는 강렬한 색을 무작정 쓰기보다, 사물의 질감과 빛의 변화에 맞게 색을 쌓아 올렸습니다. 붓질을 겹겹이 쌓는 ‘색면 구축법’을 통해, 색이 단순히 표면을 덮는 것이 아니라 형태를 만드는 역할을 하게 했습니다. 따뜻한 색과 차가운 색을 번갈아 사용해 화면에 미묘한 긴장과 깊이를 부여했습니다. 그의 색채는 절제 속에서 견고함을 형성하며, 화면에 묵직한 무게감을 남깁니다.
마티스의 색채는 세잔과 달리 대담하고 해방적입니다. 그는 사물의 실제 색을 고집하지 않았습니다. 푸른 얼굴, 초록 그림자, 붉은 바다 등 현실과 다른 색을 자유롭게 사용했습니다. 이는 색이 단순한 묘사 도구가 아니라 감정을 직접적으로 전달하는 언어라는 인식에서 비롯되었습니다. 그의 대표작 〈삶의 기쁨(Le Bonheur de Vivre, 1905-06)〉에서는 원색과 보색 대비가 화면 전반에 사용되지만, 보는 이를 피곤하게 하지 않고 오히려 생동감을 줍니다. 세잔이 색을 구조의 일부로 사용했다면, 마티스는 색을 화면의 주인공으로 만들었습니다.
조형: 구조적 구축과 감각적 조율
세잔의 조형 감각은 분석적입니다. 그는 형태를 원, 원기둥, 구, 원뿔 등 기본 기하학 형태로 단순화해 구조를 파악했습니다. 이러한 분석적 접근은 입체파(Cubism)로 이어져, 피카소와 브라크가 새로운 형태 실험을 하는 데 기초가 되었습니다. 세잔의 조형은 견고함과 균형을 중시하며, 형태의 해체보다는 재구성을 통한 안정감을 추구했습니다.
마티스의 조형 감각은 감각적이고 직관적입니다. 그는 형태를 단순화하되, 그것이 색과 함께 화면에서 어떻게 어울리는지를 중시했습니다. 종이 오려붙이기 기법에서 보여주듯, 마티스는 형태를 ‘잘라내고 배치하는’ 방식으로 화면을 구성했습니다. 이는 구조적 분석보다는 시각적 즐거움과 감각적인 조화를 목표로 한 접근입니다. 그의 조형은 움직임과 리듬이 있으며, 색과 형태가 함께 살아 움직입니다.
마티스와 세잔은 모두 구도, 색채, 조형에서 현대미술의 방향을 결정짓는 중요한 역할을 했습니다. 세잔은 구도의 안정성과 색채의 구조적 사용, 조형의 분석적 접근으로 ‘근대 회화의 아버지’라 불립니다. 마티스는 세잔의 영향을 받았지만, 색채와 구도를 해방시키고 감각적인 즐거움과 시각적 조화를 추구하며 새로운 길을 열었습니다. 세잔이 형태의 뼈대를 세운 건축가라면, 마티스는 그 뼈대 위에 화려하고 감각적인 색채의 옷을 입힌 디자이너라 할 수 있습니다. 두 거장은 서로 다른 길을 걸었지만, 그 길이 모여 현대미술의 토대를 만들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