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승업. 조선 말기, 격동의 시기를 살았던 한 화가의 이름이 2024년의 예술계에서도 회자되고 있습니다. 디지털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가 수백 년 전의 화가를 다시 돌아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장승업은 단지 그림을 잘 그린 기술자가 아니라, 한국 전통미를 품은 동시에 시대의 혼란을 그림으로 표현한 진정한 예술가였습니다. 지금 그를 주목해야 하는 이유, 그가 현대 사회와 예술에 던지는 메시지를 차근히 풀어보겠습니다.
시대를 꿰뚫은 감각, 장승업의 시선
장승업은 단순히 붓을 잘 다룬 화가가 아니었습니다. 그의 작품을 보면 누구보다 날카롭게 당대의 현실을 포착했던 관찰자였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습니다. 조선 말기의 정치적 혼란과 사회적 불안 속에서 그는 권력의 언저리에 있으면서도, 민중의 삶을 가감 없이 화폭에 담았습니다. 산수, 인물, 화조 등 다양한 장르를 넘나들며 그는 시대를 기록했고, 때로는 그것을 해석했습니다. 그림이라는 도구를 통해 그는 조선 후기의 정신적 풍경을 드러냈습니다. 장승업의 산수화는 단순한 자연 묘사가 아닙니다. 그 안에는 인간의 고단함, 고요한 저항, 자연에 기대는 마음이 고스란히 담겨 있습니다. 당시 귀족들의 기호를 맞추기 위해 그린 화조화조차도, 그 배경과 구도, 색의 농담을 보면 ‘아름다움’ 그 이상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2024년 현재 우리는 수많은 이미지 속에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장승업의 그림이 여전히 강렬한 인상을 남기는 이유는, 그 이미지들이 인간의 내면, 삶의 궤적, 역사적 흐름과 닿아 있기 때문입니다. 감각적이되 허투루 그리지 않았던 장승업의 화풍은, 지금도 충분히 살아 있고, 감동을 줍니다.
전통과 독창성, 그 사이에서 길을 찾다
장승업의 가장 큰 미덕은 ‘전통에 머무르지 않았다’는 점입니다. 그는 분명 조선의 화가였고, 정통 회화의 형식을 익혔습니다. 하지만 그것에 갇히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그는 틀 안에서 스스로의 길을 개척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를 ‘조선의 마지막 대가’라 부르지만, 동시에 ‘최초의 현대적 감각을 지닌 화가’라고도 말합니다. 그만큼 장승업은 자신만의 개성을 확립했고, 이를 위해 때론 기존의 기법을 과감히 변형하기도 했습니다. 그는 과장된 표현과 독특한 구도를 사용해 그림에 생동감을 불어넣었으며, 붓의 속도감과 필력으로 관객의 감정을 끌어냈습니다. 오늘날 창작자들이 직면한 고민 역시 이와 유사합니다. 전통과 창의성 사이, 관습과 표현 사이에서의 줄다리기. 그런 점에서 장승업의 행보는 하나의 좋은 길잡이가 됩니다. 그는 스승 없이 독학으로 자신만의 화법을 구축했고, 끊임없는 실험과 관찰을 통해 변화하는 세상에 자신의 시선을 대응시켰습니다. 디자인, 영상, 일러스트 등 다양한 분야의 젊은 창작자들이 장승업의 그림을 참조하고 연구하는 이유는 바로 그 ‘자기 길을 만든 정신’ 때문입니다. 그는 과거에 살았지만, 지금 우리보다 더 앞서 있는 창작자의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오늘의 예술과 사회가 장승업을 다시 찾는 이유
왜 2024년의 우리 사회는 장승업을 다시 바라보는 걸까요? 단지 한국 회화사에서 위대한 인물이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장승업이 남긴 ‘예술가의 태도’입니다. 그는 기득권이 아니었고, 시스템의 중심도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경계에 있었습니다. 그런 위치에서 그는 스스로를 예술로 증명해야 했고, 실제로 그렇게 했습니다. 이 점은 오늘날 수많은 신진 작가들과 일맥상통합니다. 누군가의 선택이나 허락 없이, 오직 자신의 감각과 집중으로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 하는 창작자들 말입니다. 장승업은 상업성과 진정성 사이에서도 끊임없이 고민했습니다. 때로는 귀족들의 주문을 받아 그림을 그렸고, 때로는 누구의 요청도 없이 술기운 속에 자신만의 그림을 그렸습니다. 이 양면성은 오늘날 예술가들의 현실과 다르지 않습니다. 시장을 고려해야 하지만, 동시에 자신의 목소리를 잃지 말아야 한다는 과제를 그는 이미 200년 전에 풀고 있었던 셈입니다. 뿐만 아니라, 그의 삶은 실패와 외로움의 연속이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는 그 안에서 멈추지 않고, 그림이라는 언어로 세상과 소통했습니다. 장승업을 다시 이야기한다는 것은, 결국 예술이 단순히 기술이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 사실을 다시 깨닫는 과정입니다.
장승업은 시대를 그린 화가이자,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에게 질문을 던지는 예술가입니다. 그의 그림은 조선의 것만이 아니라, 지금 우리 삶에도 연결된 이야기입니다. 혼란과 불안, 예술과 현실, 아름다움과 고뇌. 장승업이 마주한 것들은 지금 우리의 고민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그렇기에 지금, 우리는 장승업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단지 과거를 이해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오늘의 예술을 더 깊이 있게 만들기 위해서입니다. 그의 삶과 그림 속에서, 우리 각자의 창작과 표현에 대한 실마리를 찾아보시길 바랍니다.